디자인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프로젝트에 대한 디자인 목표와 컨셉을 그래픽이 아닌, 언어로 정리는 것을 어려워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디자인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언어로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난 후에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순차적이지만은 않다. 언어와 그래픽의 상호 피드백을 통해 비선형적 디벨롭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프로젝트가 완성된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컨셉을 언어로 정리하는 것은 그래픽 기술을 집중적으로 키워야 하는 시기의 학생들에겐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더더욱 언어로 디자인 컨셉 또는 아이디어 정리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언어적 영역이 잘 다져져야 디자인 프로젝트의 독창적 코어 밸류(Core Value)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에 학생 디자인 프로젝트 최종 리뷰어로 참석한 적이 있다. “저 학생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학생이 어떤 것을 왜 만들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고 지도를 부탁한다.”고 한 외국인 교수님께서 내게 이런 부탁을 하셨다. 그 학생은 양재동 화훼센터에 친환경적인 개념을 갖춘 온실을 계획하고 싶어 했고, 도면 및 다이어그램 등의 그래픽적인 결과물은 충분히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 학생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디자인 했는지, 이 디자인이 건축과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본인만의 독창성을 발휘한 아이디어인지에 대한 내용을 외부 크리틱 교수진들에게 전혀 전달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례는 많은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갖고 있는 컨셉 언어에 관한 전형적인 2가지 문제점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1. 정확한 언어로 디자인 컨셉 정의하기 (Define the design concept with the right words)
첫 번째는 컨셉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 고유명사의 기존 정의와 학생이 새로운 컨셉으로 재 정의한 단어를 혼용해서 쓰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학생이 ‘자연스러운 공간’을 디자인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자. 자연은 이미 고유명사로서의 보편적 정의를 갖고 있지만, 이 학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정의를 본인이 재 정의한 정의와 어떻게 다른지 규정이나 설명 없이 섞어서 쓴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공간’은 ‘자연과 유사한 공간’(space like mother nature), ‘자연스러운 또는 유기적인 흐름을 가진 공간’(space with natural/organic flow), ‘인공적인 자연으로 채워진 공간’(A space filled with artificial nature)등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또, ‘가상공간’(virtual space)과 ‘현실공간’(real space)을 매개하는 ‘인터페이스 공간’(interface space)을 만드는 것이 목표일 경우,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가상공간, 현실공간, 인터페이스 공간에 대한 정의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인터페이스란 말은 접점이라는 범용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구현하고자 하는 인터페이스가 물리적 공간인지, 가상공간의 한 부분인지, 개념적 수사인지 등, 잘 구분해서 써야한다. 이렇듯, 일상적인 구어가 아니라, 구현하고자 하는 핵심 아이디어를 숙고하고 정제시켜 컨셉을 이루는 언어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2. 주제와 논지의 위계 관계 구축 (Build hierarchical relation between theme & thesis during brainstorming)
두 번째는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단계(brainstorming)시, 테마/주제(Theme)와 논지/주장(Thesis)으로 이루어지는 위계 설정 혼동이 주는 오류이다. 테마/주제(Theme)는 디자이너가 광범위한 주제를 통해 목표설정을 하기 위함이고, 논지/주장(Thesis)은 디자이너의 방법론과 컨셉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이 들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흑리단길의 활성화’가 테마/주제라고 한다면,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1. 흑석역 앞 공영주차장을 복합공간화 및 공원 조성을 통한 지역 문화 활성화, 2. 흑리단길의 상업시설구성의 다변화와 지역 상권 브랜딩 강화를 통한 상권 활성화, 3. 흑석역과의 직접적인 도보 연결을 통한 흑리단길 유동인구 유입 증대 활성화, 4. 흑리단길 가로환경 및 보행환경 정비를 통한 낙후된 거리공간 활성화 등이 논지/주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지역에 대한 관점, 철학, 분석에 따라 다양한 방향의 주장이 나오기 마련이다. 즉, 테마/주제(Theme)는 좀 더 큰 위계의 목표이며, 논지/주장(Thesis)은 방법론으로써 목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겠다는 방식에 대한 디자이너의 시각이 들어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테마/주제(Theme)와 논지/주장(Thesis)의 정의를 헷갈려하고 두 위계를 섞어서 표현하다 방향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프로젝트 전체 골격을 수립하는 과정인 테마/주제(Theme)와 논지/주장(Thesis)의 설정은 그 관계를 면밀히 검증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독창적 디자인의 근원이고 이로 인해 발현되는 최종 결과물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좀 더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팝가수들의 패션스타일을 예로 들어보자. 라티노 여성 팝가수의 섹시함(Sexy Latina Femininity)을 표현하는 것이 주제(Theme)라고 가정했을 때,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화려함과 관능미를 통해 섹시함을 표현했고, 샤키라(Shakira)는 자연을 배경으로 자유롭고 경쾌한 섹시함을 표현한다. 같은 주제에서 출발 했어도, 다른 내용과 결과를 보여준 셈이다.
디자인은 디자인의 도구, 형태, 감각 또는 감성 등 다양한 원천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디자인이 발전되는 과정에서 여러 상황과 요소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다양한 원천에서 얻게 된 디자인 영감을 분석해야하고, 때로는 돌발 상황에 대처해 디자인 의도를 지켜내야 하며, 새로 발견되는 중요한 요소들은 프로젝트에 능동적으로 편입 시키면서 프로젝트를 수행해 나가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언어는 그래픽과 더불어 고객과의 소통과 프로젝트의 의도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큰 도구이다.
디자인 컨셉 구상 중에 디자인의 의도를 정제된 언어로 정리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정리된 글과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꾸준히 한다면 소기의 디자인 의도와 목표를 최종결과물로서 보다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디자이너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정의내리고, 정제되고 효율적인 언어와 그래픽을 활용해 고객과 사용자의 니즈를 만족시켜야 하며, 프로젝트의 독창적 코어밸류(Core Value)를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